법정스님─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행복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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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행복하리
관리자 전 회주 법 정 스님
좋은 날씨입니다. 날씨가 이렇게 화창하면 우리 마음도 화창해집니다. 우리 몸 자체가 자연의 일부분이므로 대자연의 상태에 따라 몸도 자연히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온 천지간에 꽃입니다. 봄기운이 사방에 철철 넘치고 있습니다. 이런 때 마음이 여린 사람들은 ‘꽃 멀미’를 앓습니다.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어서 봄을 이룹니다. 꽃이 없는 봄을 상상해 보십시오. 만약 꽃 없는 봄이 온다면 그것은 봄일 수 없습니다. 꽃을 보고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꽃을 보고 좋아하는 것은 우리들 마음에 꽃다운 요소가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무심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일은 즐겁습니다. 새삼스럽게 삶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지만 무엇엔가 쫓기는 사람들은 이런 아름다움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습니다. 그들은 꽃이 피는지 마는지, 새잎이 돋는지 마는지 관심 밖입니다.
사람은 무엇인가에 쫓기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이 아닙니다.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서는 늘 시간에 쫓기기 마련입니다. 출·퇴근시간, 회의시간, 법회에 나오느라 서두는 시간, 누굴 만나는 시간, 일어나야 하는 시간, 약속시간 등등 시간의 틀에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시간은 사람이 그어 놓은 선
그럼 시간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이 그어놓은 선입니다. 물리적인 시간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특히 공동생활에서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합니다. 만약 제멋대로 출·퇴근을 하거나 시간을 지키지 않는다면 공동체에는 큰 혼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물리적인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고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나 심리적인 시간은 그 성질이 다릅니다. 불안과 두려움은 심리적인 시간에 의해 부추김을 당합니다. 혼자 가만히 있으면서도 속으로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심리적인 시간을 감당 못해서입니다. 사람은 심리적인 시간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면 영혼을 잃어
물리적인 시간은 타의적이고 외부적입니다. 그러나 심리적인 시간은 자기적입니다.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져 있습니다. 시계가 시간을 만드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흔히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말을 합니다. ‘세월이 약이겠지요’라는 말처럼. 그러나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 말에 속지 마십시오. 시간 자체는 어떤 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세월이 지나면 거기엔 망각이 있을 뿐입니다. 모진 마음을 먹었다가도 세월이 지나가면 풀리며 망각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초기 아프리카를 탐험한 유럽인들의 경험담입니다. 이 이야기는 회교 신비주의 수행자인 ‘수피’의 우화에 실려 있습니다. 한 탐험가가 밀림을 뚫고 목적지를 향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짐을 운반해줄 세 사람의 원주민을 고용했습니다. 그들은 사흘 동안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서둘러서 밀림을 뚫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사흘째 되던 날 짐꾼들은 자리에 주저앉아 더 움직이려하지 않았습니다. 탐험가는 잔뜩 화를 내며 예정된 날짜, 시간까지 목적지에 꼭 도착해야 한다며 짐꾼들을 재촉했습니다. 그러나 이 원주민들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탐험가는 원주민 한 사람을 붙들고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지금껏 잘 오다가 갑자기 주저앉은 이유가 뭐냐’고. 그랬더니 그 원주민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곳까지 제대로 쉬지도 않고 빨리 왔습니다. 우리는 영혼이 우리를 따라 올 시간을 주기 위해 이곳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허둥대며 쫓기듯이 오느라 영혼이 따라올 시간을 주지 않았다는 말을 다른 말로 하자면 정신없이 쫓겨 온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현대인들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속도와 효율성만 내세우다가 영혼을 상실한 현대인들의 모습을 그대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속도와 효율성은 냉혹한, 비인간적인 것입니다. 너무 서두르다 제정신을 차리지 못해 실수를 저지르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며 감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차분히 생각하며 행동할 시간적 여유가 필요한데 계속 쫓기다보면 엉뚱한 곳으로 뻗어 나가게 됩니다. 원주민들의 표현대로 무슨 일에나 영혼이 따르지 않으면 불행해집니다. 바삐 서두르는 사람은 제정신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살고 있습니다. 불행하기 위해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세상인데, 카드 빚을 갚으려고 자신을 낳아 길러준 어머니를 살해하는 이 막된 세상에서 삶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할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무엇보다 먼저 마음의 안정을 이뤄야 합니다. 마음의 안정이 없으면 모든 것이 뒤틀립니다. 마음이 안정돼야 사람의 도리를 생각할 수 있고 주위의 사물을 제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행복은 오직 현재에만 존재
우리가 다 같이 바라는 행복은 온갖 생각을 다 내려놓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 볼 시간을 갖는데서 움이 틉니다. 복잡한 생각, 미운 생각, 고운 생각 다 내려놓고 그저 무심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바라 불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 안에서 행복의 싹이 틉니다. 진정한 행복은 다음에 이뤄야할 목표가 아닙니다. 지금 당장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면 한 순간이라도 행복을 누렸던 때는 그 당시의 순간이었습니다. 미래가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을 삶의 목표로 삼으면서도 이 순간의 행복을 놓치고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지 다른 시절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미루지 마십시오. 언제 어디서든 바로 그 순간에 행복을 만들고 누릴 수 있는 것이지, 어느 특정한 기회나 시간에 행복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흔히들 원하던 것을 얻는 것이 행복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자동차, 가구, 권력, 배우자 등 욕망을 이루면 행복하고 이런 욕망을 이루지 못하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원하는 것을 갖게 되면 한동안은 흐뭇하고 느긋해할지 몰라도 머지않아 시들해집니다. 그것은 모두 고정불변의 것이 아닌 변화하는, 덧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삶의 부수적인 것이지 본질일 수 없습니다.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부수적인 것은 상황에 따라 늘 변합니다. 부수적인 것과 본질적인 것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본질적인 것에는 가치를 부여해야 하지만 부수적인 것에는 그렇게 가치를 부여할 수 없습니다.
자연 속에서 행복비결 찾아야
행복은 요구하고 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어지는 것입니다. 행복은 요구하고 추구한다고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추구하거나 요구하면 행복은 우리를 비껴갑니다.
이 찬란한 봄날, 이 순간을 우리가 사람답게 살 수 있다면 행복은 이 안에 깃들어 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무엇에 쫓기듯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영혼이 미쳐 따라올 수 없도록 살아서는 안 됩니다. 안정된 마음, 차분한 마음으로 사물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며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가꾸어야 합니다. 나무들만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도 저마다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드러낸다면 그때 그곳에서 향기로운 삶의 꽃을 활짝 피울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잠재력을 묵혀두지 말고 마음껏 발휘해서 세상과의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행복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있지 않고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삶에 있음을 거듭 명심하기 바랍니다.
눈부신 봄날, 활짝 문을 연 꽃들에게서 행복하게 사는 비결을 더 구체적으로 들으면서 오늘 하루 이 자리에서 마음껏 행복을 누리십시오.
남수연 기자
관리자 전 회주 법 정 스님
좋은 날씨입니다. 날씨가 이렇게 화창하면 우리 마음도 화창해집니다. 우리 몸 자체가 자연의 일부분이므로 대자연의 상태에 따라 몸도 자연히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온 천지간에 꽃입니다. 봄기운이 사방에 철철 넘치고 있습니다. 이런 때 마음이 여린 사람들은 ‘꽃 멀미’를 앓습니다.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어서 봄을 이룹니다. 꽃이 없는 봄을 상상해 보십시오. 만약 꽃 없는 봄이 온다면 그것은 봄일 수 없습니다. 꽃을 보고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꽃을 보고 좋아하는 것은 우리들 마음에 꽃다운 요소가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무심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일은 즐겁습니다. 새삼스럽게 삶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지만 무엇엔가 쫓기는 사람들은 이런 아름다움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습니다. 그들은 꽃이 피는지 마는지, 새잎이 돋는지 마는지 관심 밖입니다.
사람은 무엇인가에 쫓기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이 아닙니다.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서는 늘 시간에 쫓기기 마련입니다. 출·퇴근시간, 회의시간, 법회에 나오느라 서두는 시간, 누굴 만나는 시간, 일어나야 하는 시간, 약속시간 등등 시간의 틀에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시간은 사람이 그어 놓은 선
그럼 시간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이 그어놓은 선입니다. 물리적인 시간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특히 공동생활에서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합니다. 만약 제멋대로 출·퇴근을 하거나 시간을 지키지 않는다면 공동체에는 큰 혼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물리적인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고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나 심리적인 시간은 그 성질이 다릅니다. 불안과 두려움은 심리적인 시간에 의해 부추김을 당합니다. 혼자 가만히 있으면서도 속으로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심리적인 시간을 감당 못해서입니다. 사람은 심리적인 시간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면 영혼을 잃어
물리적인 시간은 타의적이고 외부적입니다. 그러나 심리적인 시간은 자기적입니다.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져 있습니다. 시계가 시간을 만드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흔히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말을 합니다. ‘세월이 약이겠지요’라는 말처럼. 그러나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 말에 속지 마십시오. 시간 자체는 어떤 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세월이 지나면 거기엔 망각이 있을 뿐입니다. 모진 마음을 먹었다가도 세월이 지나가면 풀리며 망각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초기 아프리카를 탐험한 유럽인들의 경험담입니다. 이 이야기는 회교 신비주의 수행자인 ‘수피’의 우화에 실려 있습니다. 한 탐험가가 밀림을 뚫고 목적지를 향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짐을 운반해줄 세 사람의 원주민을 고용했습니다. 그들은 사흘 동안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서둘러서 밀림을 뚫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사흘째 되던 날 짐꾼들은 자리에 주저앉아 더 움직이려하지 않았습니다. 탐험가는 잔뜩 화를 내며 예정된 날짜, 시간까지 목적지에 꼭 도착해야 한다며 짐꾼들을 재촉했습니다. 그러나 이 원주민들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탐험가는 원주민 한 사람을 붙들고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지금껏 잘 오다가 갑자기 주저앉은 이유가 뭐냐’고. 그랬더니 그 원주민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곳까지 제대로 쉬지도 않고 빨리 왔습니다. 우리는 영혼이 우리를 따라 올 시간을 주기 위해 이곳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허둥대며 쫓기듯이 오느라 영혼이 따라올 시간을 주지 않았다는 말을 다른 말로 하자면 정신없이 쫓겨 온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현대인들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속도와 효율성만 내세우다가 영혼을 상실한 현대인들의 모습을 그대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속도와 효율성은 냉혹한, 비인간적인 것입니다. 너무 서두르다 제정신을 차리지 못해 실수를 저지르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며 감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차분히 생각하며 행동할 시간적 여유가 필요한데 계속 쫓기다보면 엉뚱한 곳으로 뻗어 나가게 됩니다. 원주민들의 표현대로 무슨 일에나 영혼이 따르지 않으면 불행해집니다. 바삐 서두르는 사람은 제정신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살고 있습니다. 불행하기 위해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세상인데, 카드 빚을 갚으려고 자신을 낳아 길러준 어머니를 살해하는 이 막된 세상에서 삶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할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무엇보다 먼저 마음의 안정을 이뤄야 합니다. 마음의 안정이 없으면 모든 것이 뒤틀립니다. 마음이 안정돼야 사람의 도리를 생각할 수 있고 주위의 사물을 제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행복은 오직 현재에만 존재
우리가 다 같이 바라는 행복은 온갖 생각을 다 내려놓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 볼 시간을 갖는데서 움이 틉니다. 복잡한 생각, 미운 생각, 고운 생각 다 내려놓고 그저 무심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바라 불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 안에서 행복의 싹이 틉니다. 진정한 행복은 다음에 이뤄야할 목표가 아닙니다. 지금 당장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면 한 순간이라도 행복을 누렸던 때는 그 당시의 순간이었습니다. 미래가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을 삶의 목표로 삼으면서도 이 순간의 행복을 놓치고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지 다른 시절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미루지 마십시오. 언제 어디서든 바로 그 순간에 행복을 만들고 누릴 수 있는 것이지, 어느 특정한 기회나 시간에 행복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흔히들 원하던 것을 얻는 것이 행복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자동차, 가구, 권력, 배우자 등 욕망을 이루면 행복하고 이런 욕망을 이루지 못하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원하는 것을 갖게 되면 한동안은 흐뭇하고 느긋해할지 몰라도 머지않아 시들해집니다. 그것은 모두 고정불변의 것이 아닌 변화하는, 덧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삶의 부수적인 것이지 본질일 수 없습니다.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부수적인 것은 상황에 따라 늘 변합니다. 부수적인 것과 본질적인 것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본질적인 것에는 가치를 부여해야 하지만 부수적인 것에는 그렇게 가치를 부여할 수 없습니다.
자연 속에서 행복비결 찾아야
행복은 요구하고 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어지는 것입니다. 행복은 요구하고 추구한다고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추구하거나 요구하면 행복은 우리를 비껴갑니다.
이 찬란한 봄날, 이 순간을 우리가 사람답게 살 수 있다면 행복은 이 안에 깃들어 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무엇에 쫓기듯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영혼이 미쳐 따라올 수 없도록 살아서는 안 됩니다. 안정된 마음, 차분한 마음으로 사물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며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가꾸어야 합니다. 나무들만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도 저마다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드러낸다면 그때 그곳에서 향기로운 삶의 꽃을 활짝 피울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잠재력을 묵혀두지 말고 마음껏 발휘해서 세상과의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행복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있지 않고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삶에 있음을 거듭 명심하기 바랍니다.
눈부신 봄날, 활짝 문을 연 꽃들에게서 행복하게 사는 비결을 더 구체적으로 들으면서 오늘 하루 이 자리에서 마음껏 행복을 누리십시오.
남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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