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

사단법인 대한불교 연조계종 총본산 달마사

스님 법문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달마사
댓글 0건 조회 529회 작성일 14-06-04 15:05

본문

생각이 바뀌면 인생이 달라진다  

참나의 발견

1. 어느날 주인이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오는데
집의 머슴이 마당에서 무엇을 열시히 찾고 있는 것이다.
주인이 의아하여 물었다.
너는 지금 무엇을 찾고 있는냐 하였습니다.
머슴이 대답하길 주인님 방안에서 바늘을 잃었는데
방안은 어두워서 찾지 못하나이다.
그래서 밝은 밖에서 바늘을 찾고 있나이다. 하고 대답 하였습니다.

2. 열자가 어느날 제나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노상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백혼무인이 열자에게 물었다.
어디 갔다가 오시는 길입니까.
나는 제나라에 갔다가 그만 놀래어서 돌아 오는 길입니다.
어째서 놀랬습니까.
글세 제가 점방에서 열집쯤 점방에서 밥을 구하는데
열다섯 집에서 나를 신용하고 물건부터 먼저 내주지 않겠어요.
그렇다고 놀랠 것은 없지 않습니까.

3. 아니요, 내 마음속의 성실도 석연치 않은데
겉모양으로만 남으로부터 성실한 것으로 비춰져서
사람들의 마음을 복종 시키고 또 사람들로부터 대우를 받다니
이것은 마음이 산란하여 걱정이 태산입니다. 하였다.

4. 또한 나라에서 나를 보고 보람있는 국사를 처리 하라고 한다면 이것은 큰일입니다. 나는 지혜가 궁하고 또 어리석어 정말 많은 사람들을 구하는데는 힘이 없습니다. 하였다.

5. 또 백혼 무인이라는 사람은 열자 집에 찾아 갔습니다.
그때 열자 집에는 사람들이 방안에 가득하였습니다.
그때 백혼 무인이 이광경을 보고 한참 바라보다가 집으로 돌아 올려고 하는데
열자가 맨발로 쫓아와서 하는 말이 선생님 께서 예까지 오셨으면
한 말씀을 하시고 가셔야지 그냥 가시면 어떻께 하십니까 하였더니
백혼무인은 하는 말이 이제 다 글렀소,
자네를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치켜 세우니
자네는 사람들의 치켜세움으로 인하여 자네를 흔들리게 될것이니
이제는 아무 의미도 없소 하였습니다.

6. 이름이 나는 것을 어찌 하찮은 돌에 새기리요,
길가는 사람입이 비석보다 났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7. 경행록이라는 책에 이르기를 정치라는 것은 곧 청정이라하였고,
공평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집을 이룬다는 것은 곧 근검이라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정치는 공평하여야 하며 항상 펑렴하여야 한다는 것을
옛날에도 강조 한 듯 합니다. 그리고 가사는 부지런한고 근검하면
반드시 이룬다 하였으니 이것은 만고에 진리입니다.

8. 진실함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진실한 민족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진실한 민족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정직한 민족이라는 것을뜻합니다.

불교 에서는 항상 업연설을 말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나쁜 업을 만들지 않는다는 불심으로 정직해지는 것이라 믿습니다.
동양인은 고오타마 붓다를 사랑하기 때문에 동양사람은
그 진실함을 부정할수 없습니다.
모든 물질은 다 허무한 것이다 그것은 진실한 것이 아니다.
니체가 이미 100년전에 신은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신이 죽었다면 무엇이 살아 있을까요.
이세상은 무엇이 살아 있어야 하고 죽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은 죽었다 이것입니다. 정신은 영원히 삽니다. 불
교의 숭고한 청정정신이 온세계에 널리 퍼지게 하는 것이
곧 불교의 진실한 가르침일것입니다.

가>
오만한 마음을 갖으면 파멸한다.
부처님 께실 때 제바달따라는 제자가 있었다.
그 제바달다는 부처님의 가까운 친척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는 교단을 자신의 것으로 하기 위하여
마가다국의 왕의 태자의 힘을 빌어서 거만하게 되었다.
부처님이 죽림정사에 계실 때 일이다.

소문은 이제 제바달다가 태자와 함께 이나라의
왕권과 승단의 권한을 나누어 갖는다고 하는 소문이 자자 하였다.
이때 제자들은 부처님게 나아가서 의론 하였다
그러나 부처님은 말씀을 하시길 너희들은 제바달다를 부러워 하여서는 아니된다.
너희들은 제바닷다의 명성과 이익을 부러워 하여서는 아니된다.
파초나무에 바나나가 열리면 그 나무는 죽는 것처럼 말이다.

나>
자등명 법등명의 유훈 부처님이 마직막으로 설법하신 말씀이 유명합니다.
그것은 자등명 법등명 이다. 부처님은 죽림에서 계실 때
안거를 지내면서 아난다는 부처님에게 법을 청하였다. 나는 비구들을 교도 하노라.

“너희들은 자신을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으라.
이밖의 다른것에는 기대지 말라.” 하였습니다.
부처님은 자신이 교단의 지도자라는 것까지도 부정하시고 계십니다.
법등명(法燈明) 그것은 곧 법의 중대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법은 곧 일체를 인정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이끈다는 뜻이 거기에 담겨 있습니다.

부처님이 자신을 교단의 전체로 말씀 하시지 않음은
인간의 자유인격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종교 같으면 너희들이 나를 따르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 지느니라.
하는 식의 가르침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일체의 권위 주위도 허락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올바른 저의와 실천을 강조 하신 것입니다.
부처님을 흠모하고 경외 하는 것은 그의 가르침을 흠모하는 것이며,
진리에 대한 흠모입니다.

자등명(自燈明)을 말씀하신뜻은 인간은 삶의 주최로서
인간 자신에 대한 경외와 무명을 타파하고 진실된 자아완성을 하여 살라는뜻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나를 중요하게 여기고, 나만이 최고라는 식의 인식을 하고 살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의 진실한 본래 모습을 바라보라는 것은
그것은 무지의 나를 보아 밝혀 지혜의 나를 보라는 가르침입니다.
진정 자신을 보아 스승으로 삼을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성인일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종교 들은 그들은 어떻한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오직 지시하는 것 뿐이다. 이렇게 하라. 그
렇게 하는 것이 천당간다. 인간은 천당에 가기 위하여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갈릴레이는 참으로 유모감각이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에서 그를 죽이려고 하니까 이렇게 말했답니다.
나를 죽이기 위하여 애쓰지 말라,
어떤식으로든 나는 결국 죽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 코페르니쿠스는 위대한 선지자이다.
모든 사람들이 지구는 평면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
그는 지구는 둥글다고 하였다가 또 크게 혼줄이난다.
지구가 해를 돈다고 하였다가
그것은 책에 씌여져 있지 않다고 하여 또 혼줄이난다.
지구가 평면이든 둥굴든 이것이 종교와 무슨 관계가 있나.

뗏목에 대한 비유
1, 부처님은 자신이 설한 가르침을 수단으로 삼지,
결코 목적으로 삼지 말라. 하였습니다.
그것이 곧 뗏목에 대한 비유입니다.
그러나 불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신봉하면서
그 가르침에 집착하지 않을수 없다.
뎃목에 대한 비유는 이러한 아집에대한 경계이다.

부처님은 이러한 비유를하시었다.
“어떤 나그네가 바닷가에 다았다.
그리고 그는 생각하였다.
아- 저먼곳의 바다끝쪽에 평화로운 땅이 있다.

그곳은 일체의 어려움이 없고 일체의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는곳,
인간의 고통이 끝어진곳이라 한다.
나는 그곳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그는 뗏목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뗏목을타고 그 바다를 헤처 그곳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생각하였습니다.
내가 이곳까지 오기까지는 이 뗏목이 아니면 어떻게 왔겠나 하고
그는 그 뗏목을 갖고 갈려고 한다면 어떻겠는냐? ”
이에 대하여 비구들은 한결같이 그 뗏목은 버려야 한다고 합니다.

부처님은 이어서 말씀 하십니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 뗏목의 비유로서 너희들에게 훌륭한 가르침을 주었다.
그렇다 교법을 배운후에는 버려야지 결코 그것에대하여 집착하면 되지 않느니라.
너희들이 뗏목의 도구처럼 교법도 배워안후에는 버려야 하느니라.
하물며 법아닌것이야 말할것이 있는냐?

이와같이 부처님의 교법의 설법은 깨달음을 이루게 하기 위한 설법뿐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장차 중생들이 이 교법으로 집착하여 생겨날 일체의 모든 우려까지도
부처님은 걱정하시면서 버리라 한것입니다.
따라서 부처님은 일체의 모든 것은 부처님이 방편으로
이세상에 오시어 베푸시었다는 것이고 중생들은 이 방편을따라서 공부하여
허망한 세상에서 참된 인간이 되라는 교훈을 주신 것이다.

독화살의 비유

부처님은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하여서는 일일이 대답을 하시지 않했다.
형이상학이라는 것은 지성으로는 문제를 풀수 없는것이기 때문이다.
논증할수 없는 관념적인 것을 말한다.

또인간이 살아가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데
이것을 가지고 붙잡혀 있다면 그것은 정말로 우서운 일이기 때문이다.
인도에 있어서 부처님 당시에 모든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대답을 해야 옳은것이고
그 대답은 또 신봉되어야 한다는 식의 믿음이 있었다.
옛날고대의 종교에서의 인간구제는 어쩔수 없을지도 모른다.

“세계는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 유한한 것인가,
또는 무한한 것인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것인가?
부처님은 이러한 말씀은 전혀 말씀하시지 않는다.
나는 그러나 참을수 없다. 부처님게 여쭈어봐서 이 세상이 영원하다면
부처님을 다라 수행하지만은 영원하지 않다면 나는 부처님을 비방하고 떠나야겠다. ”

부처님은 그의 태도를 보시고 그의 마음을아신후에 그의 그러한 태도를 꾸짖으시고
이세상은 허망하지도, 영원하다고도 하지 않했음을상기 시키후 설명을 하신다.

“만일 어떤사람이 부처님이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고 하여
수행을하지 않는다면 그는 그 문제를 풀기도 전에 죽을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도움이 되겠는가. 이제 부처님은 독화살의 비유를 드신다.”



생각이 바뀌면 인생이 달라진다.

1, 인생을 바꾸고 싶은 사람은 모두 광명실상을 얻을수 있는 동명불원에 와야 합니다.

인생을 바꾸고 싶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모두가 다 인생을 한번 바꾸었으면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를 모릅니다.
어떤사람은 이 사업을하면 인생이 바뀔까,
저 사업을 하면 인생이 바뀔까 하는 것입니다.
사업을 바꾼다 해서 인생이 바뀔것이라면 누구라도 인생을 바꿀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이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2, 이 세상에는 두가지가 있다.

이 세상에는 항상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칼이며 하나는 방패입니다.
칼은 무엇이든 베는 것이며, 방패는 무엇이라도 날아오면 막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는 인류가 자기 합리화 시키기 위하여 자연의 섭리라 말합니다.
하나는 운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운도 있으며 명도 있고 그 사람의 의지도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의지가 어떻한가가 곧 인생의 진로가 바뀌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개척자들에 의하여 발전 하여왔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3, 무엇이든지 세심히 관찰하는 사람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이와 같이 관찰하기 때문에
어떠한 어려운일이 생기더라도 그것을 슬기롭게 헤처 갈수가 있습니다.
내게 닦친일을 헤쳐가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새로운 일을 개척할 수가 있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은 어제든지 새로운일을 만들어 가며 헤쳐가는
기술을 읶혀야 하는 것입니다.

4, 평상심(平常心)이 도(道)라 하는데,

정말 평상심이 도가 될까요? 평상심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평상심은 왜곡된 마음이 아니라 정심(正心)을 말합니다.
바른 바음이 평상심 입니다.
무엇인가를 만들려고 하지 않음이 아니라 바르게 만드는 것,
그리고 새롭게 하는 것이 평상심입니다. 정체되고 썩은 마음이 아니라
깨끗하고 맑은 마음이 흐르는 것을 평상심이라 합니다.

부처님께서 아함경에 “여기에 삶이 있다” 하신 말씀은 여기가 어디일까요,
그곳은 바로 이곳입니다. 이곳은 광명이 있는곳입니다.
광명은 바로 미혹한 마음이 아니라 밝아 있는마음을 일러 하는 말씀입니다.
밝다는 것은 거짓이 없다라는 말과도 같습니다.
거짓이 없는 그것이 바로 평상심입니다. 이러한 평상심 이라야 곧 성취합니다.

그때 바로 부처님의 삶이 실현 됩니다.
나 자신의 여태까지의 삶을 바꾸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나의 인생관이 바뀌는 일이며, 나의 세계관이 바뀝니다.
인생관과 세계관이 바뀐다는 것은 곧 나의 삶이 바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의 삶을 360도 바꾸지 못하면 그의 성공도 바랄수 없습니다.
미국에서의 25대 대기업은 평균 22년가고
우리나라에서의 30대대기업은 겨우 16년가고 일본이 21년간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30대 기업은 과거 20년전에 있었던
기업은 지금 단 하나도 10대 기업군에 든 것이 없습니다.
곧 자기 자신을 혁신 못했다는 것입니다. 평상심이란
그때그때 그 시절을 따라갈수 있는 것, 억지로 만들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육체도 변한다면 사물이 변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육체를 갖은 우리가 곧 예지 충만한 지혜로 이루어낸
자신을 바라볼수 있는 눈을 갖어야 합니다. 인간이 아무리 자식을 낳고 또 낳고,
또 아이가 싫다고 하더라도 또 낳고 어떤사람은 아이를 낳지 못하고 합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인간은 육체인간이 아니라 곧 부처님의 신력입니다.
우리인간은 저 멀리 정신세계에서 온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지혜인간이라 합니다.
지혜는 어디에서 올까요, 그것은 아무도 그 온곳을 모릅니다.
그러니까 온곧이 없다라는 것이 됩니다. 곧 불심이라는 마음은 인간이 태어나지
말라해도 태어날 수 있게하는 부처님의 마음을 말합니다.

5, 대불은 부처님을 크게 조성하여 대불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곧 일체 우주를 감사는 우주 전체의 몸을 말합니다.
그레서 곧 대불입니다. 대불은 곧 대방광불을 말합니다.
대방광불이란 부처님이 우주전체를 하고 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주를 전체로 할수 있는 부처님이 누굴까요.
그 부처님은 비로자나불입니다.
비로자나 부처님은 우주를 몸을 삼고 우주를 집을 삼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