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원수 갚는 방법(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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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 갚는 방법(3)/성철스님▒
예전 인도에서는 조석(朝夕)으로 예불시간에
꼭 지송(持誦)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나지르제타」라는 스님이 지은
150찬불송(一百五十護佛頌)이 그것입니다.
의정(義淨) 법사의 남해기귀전(南海寄歸傳)에도 보면,
의정법사가 인도에 갔을 때 전국 각 사찰에서
150 찬불송을 조석으로 외우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거기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은심과부재 배덕기심원 존관원극경 유여극중은
(恩深過覆載 背德起深怨 尊觀怨極境 猶如極重恩)
베푼 은혜 천지보다 깊어도
그걸 배반하고 갚은 원수 맺는다.
부처님은 그 원수를 가장 큰 은혜로 본다.
쉽게 말하자면 어떤 상대를 부모보다 부처님보다
더 섬기고 받들고 하는데,
그는 나를 가장 큰 원수로 삼고 자꾸 해롭게 한다 말입니다.
이럴 때 상대가 나를 해롭게 하면 할수록
그만큼 상대를 더 섬긴다는 말입니다.
원어존전해 존어원전친 피항구불파 불이피위은
(怨於尊轉害 尊於怨轉親 彼桓求佛過 佛以彼爲恩)
원수는 부처님을 해롭게 해도
부처님은 원수를 섬기기만 한다.
상대는 부처님 허물만 보는데
부처님은 그를 은혜로 갚는다.
존어원전친(尊於想乾親)!부처님은 원수를 섬기기만 한다!
근본은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저 사람에게 잘 해주는데 상대방은 내 잘 해주는 것은
하나도 없이 다 내버리고 자꾸 나를 해롭게만 한단 말입니다.
그런데도 섬기기만 하란 말인가?
그렇읍니다.
상대가 나를 해롭게 하면 할수록 더욱 더 저쪽을
받들고 더 섬긴다 이 말입니다.
심원해자심애호(深怨害者深愛護)! 나를 가장 해치는 이를 가장 받든다!
이것이 부처님 근본사상이고 불교의 근본입니다.
전에도 한 번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교 믿는 사람 몇이 삼천배 절하러 왔길레
절을 할 때 그냥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제일 반대하고 예수님 제일 욕하는 그 사람이
제일 먼저 천당에 가도록 그렇게 기원하면서 절하시오.
이렇게 말했더니 참 좋겠다고 하면서 절 삼천배 다 했습니다.
이것을 바꾸어서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부처님 제일 욕하고 스님네 제일 공격하는 그 사람이
극락세계에 제일 먼저 가도록 축원하고 절 합시다.
이제는 우리 불자들에게도 이런 소리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천당에 가고 안 믿으면 모두 지옥간다.
이렇게 되면 참 곤란합니다.
우리 불교는,
부처님은 안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착하게 살면 다 좋은 데 간다.
부처님 믿고 안 믿고 할 것 없습니다.
착한 일을 하기만 하면 좋은데 간다고 하지,
우리 부처님 믿어야만 극락세계 간다는 소리는 안 한다 말입니다.
그건 신사가 아닙니다.
우리 스님네들이 부처님 제일 욕하고 스님네 제일 욕하는 사람이,
극락세계 제일 먼저 가도록 축원하고 기도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것이 사실에 있어서
“저 원수를 보되 부모같이 섬겨라”이 말인 것입니다.
원수를 부모같이 섬길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고,
또 자꾸 그렇게 해 나갈 것 같으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어 버립니다
부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원수를 부모와 같이 섬기게 되면
일체 번뇌망상과 일체중생의 병은 다 없어진다고.
중생의 모든 병이 다 없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이 부처 입니다. 그렇게 해서 성불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불을 목표로 하고 사느니만큼
부처님 말씀을 표준삼아서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 때 그 때 자기 감정에 치우쳐 살려고 하면 참 곤란합니다.
한편으로는 또 이런 의심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 큰일났네. 예수교에서는 치고 들어오는데
자꾸 절만 하고 있으면 불교는 어떻게 되느냐 말야,
상대가 한 번 소리지르면 우리는 열 번 소리질러야
겁이 나서 도망갈텐데,
가만히 있다가는 불교는 씨도 안 남겠다.자! 일어나자.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럴수록 자꾸 절하고 그런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축원하는,
그런 사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에게 선전하고,
그런 사상을 가지고 일상생활에 실천해 보십시오.
불교는 바닷물 밀듯 온 천하를 덮을 것입니다.
상대가 주먹질 한다고 맞주먹질하고 달려드는 것보다는,
저쪽이 주먹질할지라도 우리는 그 사람을
부모와 같이 부처님같이 섬기고 그렇게 생활할 것 같으면,
그만 모든 사람이 그것에 다 감동이 되고 감복이 되고 해서,
“불교가 그런 것인가 ! ”하고,
불교 안 믿을래야 안 믿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부처님 제자들이 부처님 말씀을 따라,
부처님 가장 욕하고 스님네 가장 공격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 사람이 가장 먼저 극락세계에 가도록 그렇게
발원하고 기도하는 생활을 하면,
불교는 실제 온 천하를 다 덮을 것입니다.
그럼 장애는 어느 곳에 있는가?
저쪽에서 소리지른다고 이쪽에서 같이 소리지르기 때문에
안 되는 것입니다. 저쪽에서 주먹 내놓는다고
이쪽에서도 같이 주먹 내놓기 때문에 안됩니다.
저쪽에서 불지른다고 같이 불을 가지고 달려드니까
함께 타버리고 말 것 아닙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저쪽에서 아무리 큰 불을 가져오더라도
이쪽에서 자꾸 물을 들이붓는단 말 입니다.
어찌 당하겠습니까?
결국 불은 물을 못이기는 것입니다.
나중의 성불(成佛)은 그만두고 전술(戰術),
이기는 전술을 가지고 말하더라도,
불에는 물로써 달려들어야지 불로써 달려들어서는 안됩니다.
첩실(妾室)을 아주 미워하는 사람보고 첩실을 섬기라는 말보다도
“첩실 떼는 방법을 가르쳐 줄까?”할 때,
이것은 전술을 이야기 하는 겁니다.
내 전술대로 하면 결국 첩살이는 도망가 버립니다.
이것도 일종의 방편인데,
흔히 전술로써 이렇게 말해주기도 합니다.
근본은 어다 있느냐 하면,
모든 원수를 부모와 같이 섬기자! 하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법문의 총결산을 하겠습니다.
살상무구상청정(實相無垢常淸淨)
귀천노유사여불(貴廳老幼事如佛)
극중죄인극존경(極重罪人極尊敬)
섬원해자심애호(深怨害者深愛護)
모든 일체만법의 참 모습은 때가 없어 항상 청정합니다.
유정(有情) 무정(無情) 할 것 없이 전체가
본래성불(本來成佛)이란 말입니다.
옷은 아무리 떨어졌어도 사람은 성한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귀한 사람이나 천한 사람이나
늙은이나 어린이나 전부 다 부처님같이 섬기고,
극히 중한 죄를 지은 죄인까지도 받들어 모셔야 합니다.
동시에 나를 가장 해롭게 하는 사람을
부모같이 섬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섬원해자심애호(深怨害者深愛護 !
나를 가장 해치는 이를 가장 받든다!
이것이 우리 불교의 근본자세 입니다.
이것을 우리의 근본지침으로 삼고 표준으로 삼아서
생활하고 행동해야만, 부처님 제자라고 할 수 있고
법당에 들어 앉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본은 원수를 부모와 같이 섬기자는
여기에 있느니 만큼 우리 서로 서로 노력합시다. (끝)
-법문출처:해인지<해인법문>-
예전 인도에서는 조석(朝夕)으로 예불시간에
꼭 지송(持誦)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나지르제타」라는 스님이 지은
150찬불송(一百五十護佛頌)이 그것입니다.
의정(義淨) 법사의 남해기귀전(南海寄歸傳)에도 보면,
의정법사가 인도에 갔을 때 전국 각 사찰에서
150 찬불송을 조석으로 외우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거기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은심과부재 배덕기심원 존관원극경 유여극중은
(恩深過覆載 背德起深怨 尊觀怨極境 猶如極重恩)
베푼 은혜 천지보다 깊어도
그걸 배반하고 갚은 원수 맺는다.
부처님은 그 원수를 가장 큰 은혜로 본다.
쉽게 말하자면 어떤 상대를 부모보다 부처님보다
더 섬기고 받들고 하는데,
그는 나를 가장 큰 원수로 삼고 자꾸 해롭게 한다 말입니다.
이럴 때 상대가 나를 해롭게 하면 할수록
그만큼 상대를 더 섬긴다는 말입니다.
원어존전해 존어원전친 피항구불파 불이피위은
(怨於尊轉害 尊於怨轉親 彼桓求佛過 佛以彼爲恩)
원수는 부처님을 해롭게 해도
부처님은 원수를 섬기기만 한다.
상대는 부처님 허물만 보는데
부처님은 그를 은혜로 갚는다.
존어원전친(尊於想乾親)!부처님은 원수를 섬기기만 한다!
근본은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저 사람에게 잘 해주는데 상대방은 내 잘 해주는 것은
하나도 없이 다 내버리고 자꾸 나를 해롭게만 한단 말입니다.
그런데도 섬기기만 하란 말인가?
그렇읍니다.
상대가 나를 해롭게 하면 할수록 더욱 더 저쪽을
받들고 더 섬긴다 이 말입니다.
심원해자심애호(深怨害者深愛護)! 나를 가장 해치는 이를 가장 받든다!
이것이 부처님 근본사상이고 불교의 근본입니다.
전에도 한 번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교 믿는 사람 몇이 삼천배 절하러 왔길레
절을 할 때 그냥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제일 반대하고 예수님 제일 욕하는 그 사람이
제일 먼저 천당에 가도록 그렇게 기원하면서 절하시오.
이렇게 말했더니 참 좋겠다고 하면서 절 삼천배 다 했습니다.
이것을 바꾸어서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부처님 제일 욕하고 스님네 제일 공격하는 그 사람이
극락세계에 제일 먼저 가도록 축원하고 절 합시다.
이제는 우리 불자들에게도 이런 소리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천당에 가고 안 믿으면 모두 지옥간다.
이렇게 되면 참 곤란합니다.
우리 불교는,
부처님은 안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착하게 살면 다 좋은 데 간다.
부처님 믿고 안 믿고 할 것 없습니다.
착한 일을 하기만 하면 좋은데 간다고 하지,
우리 부처님 믿어야만 극락세계 간다는 소리는 안 한다 말입니다.
그건 신사가 아닙니다.
우리 스님네들이 부처님 제일 욕하고 스님네 제일 욕하는 사람이,
극락세계 제일 먼저 가도록 축원하고 기도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것이 사실에 있어서
“저 원수를 보되 부모같이 섬겨라”이 말인 것입니다.
원수를 부모같이 섬길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고,
또 자꾸 그렇게 해 나갈 것 같으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어 버립니다
부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원수를 부모와 같이 섬기게 되면
일체 번뇌망상과 일체중생의 병은 다 없어진다고.
중생의 모든 병이 다 없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이 부처 입니다. 그렇게 해서 성불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불을 목표로 하고 사느니만큼
부처님 말씀을 표준삼아서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 때 그 때 자기 감정에 치우쳐 살려고 하면 참 곤란합니다.
한편으로는 또 이런 의심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 큰일났네. 예수교에서는 치고 들어오는데
자꾸 절만 하고 있으면 불교는 어떻게 되느냐 말야,
상대가 한 번 소리지르면 우리는 열 번 소리질러야
겁이 나서 도망갈텐데,
가만히 있다가는 불교는 씨도 안 남겠다.자! 일어나자.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럴수록 자꾸 절하고 그런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축원하는,
그런 사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에게 선전하고,
그런 사상을 가지고 일상생활에 실천해 보십시오.
불교는 바닷물 밀듯 온 천하를 덮을 것입니다.
상대가 주먹질 한다고 맞주먹질하고 달려드는 것보다는,
저쪽이 주먹질할지라도 우리는 그 사람을
부모와 같이 부처님같이 섬기고 그렇게 생활할 것 같으면,
그만 모든 사람이 그것에 다 감동이 되고 감복이 되고 해서,
“불교가 그런 것인가 ! ”하고,
불교 안 믿을래야 안 믿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부처님 제자들이 부처님 말씀을 따라,
부처님 가장 욕하고 스님네 가장 공격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 사람이 가장 먼저 극락세계에 가도록 그렇게
발원하고 기도하는 생활을 하면,
불교는 실제 온 천하를 다 덮을 것입니다.
그럼 장애는 어느 곳에 있는가?
저쪽에서 소리지른다고 이쪽에서 같이 소리지르기 때문에
안 되는 것입니다. 저쪽에서 주먹 내놓는다고
이쪽에서도 같이 주먹 내놓기 때문에 안됩니다.
저쪽에서 불지른다고 같이 불을 가지고 달려드니까
함께 타버리고 말 것 아닙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저쪽에서 아무리 큰 불을 가져오더라도
이쪽에서 자꾸 물을 들이붓는단 말 입니다.
어찌 당하겠습니까?
결국 불은 물을 못이기는 것입니다.
나중의 성불(成佛)은 그만두고 전술(戰術),
이기는 전술을 가지고 말하더라도,
불에는 물로써 달려들어야지 불로써 달려들어서는 안됩니다.
첩실(妾室)을 아주 미워하는 사람보고 첩실을 섬기라는 말보다도
“첩실 떼는 방법을 가르쳐 줄까?”할 때,
이것은 전술을 이야기 하는 겁니다.
내 전술대로 하면 결국 첩살이는 도망가 버립니다.
이것도 일종의 방편인데,
흔히 전술로써 이렇게 말해주기도 합니다.
근본은 어다 있느냐 하면,
모든 원수를 부모와 같이 섬기자! 하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법문의 총결산을 하겠습니다.
살상무구상청정(實相無垢常淸淨)
귀천노유사여불(貴廳老幼事如佛)
극중죄인극존경(極重罪人極尊敬)
섬원해자심애호(深怨害者深愛護)
모든 일체만법의 참 모습은 때가 없어 항상 청정합니다.
유정(有情) 무정(無情) 할 것 없이 전체가
본래성불(本來成佛)이란 말입니다.
옷은 아무리 떨어졌어도 사람은 성한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귀한 사람이나 천한 사람이나
늙은이나 어린이나 전부 다 부처님같이 섬기고,
극히 중한 죄를 지은 죄인까지도 받들어 모셔야 합니다.
동시에 나를 가장 해롭게 하는 사람을
부모같이 섬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섬원해자심애호(深怨害者深愛護 !
나를 가장 해치는 이를 가장 받든다!
이것이 우리 불교의 근본자세 입니다.
이것을 우리의 근본지침으로 삼고 표준으로 삼아서
생활하고 행동해야만, 부처님 제자라고 할 수 있고
법당에 들어 앉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본은 원수를 부모와 같이 섬기자는
여기에 있느니 만큼 우리 서로 서로 노력합시다. (끝)
-법문출처:해인지<해인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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